지원 신청 서류를 들고 주민센터 창구 앞에 섭니다. 직원이 옆줄 사람도 다 들리는 목소리로 '소득이 이게 전부세요?' 하고 다시 묻습니다. 별일 아닌 듯 지나갔지만, 돌아오는 길이 이상하게 작아졌던 적, 혹시 있으신가요?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그 직원은 나쁜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정해진 절차대로, 빠짐없이 확인했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은 '품위 있는 사회'를 이렇게 말합니다 — 사람들이 서로 친절한 사회가 아니라,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라고요. 친절은 개인이 채워 넣는 것이지만, 모욕은 종종 창구의 구조에 이미 들어가 있습니다. 칸막이 없이 다 들리는 자리, 소득을 소리 내어 확인해야 하는 순서 — 그 사이에 '한 사람이 부끄럽지 않게 설 곳'은 애초에 설계되어 있지 않았던 겁니다. 누구도 모욕하려 하지 않았는데 그 자리를 지나온 사람만 작아진다면, 그건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자리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저도 예전엔 그냥 '직원이 좀 무뚝뚝했네' 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다시 보기 시작하니까, 그 무뚝뚝함 뒤에 있던 '자리'가 보이더라고요. 오늘 하루, 누군가가 유독 작아 보였던 장면이 있었다면,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서 있던 자리를 한번 낯설게 다시 봐보세요. 거기 무엇이 빠져 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