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10년을 드나든 단골 가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로 온 직원이 저를 아주 정중하게, 그런데 처음 보는 손님처럼 응대하더라고요. 혹시, 비슷한 순간 겪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그 직원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 친절했고, 예의도 발랐으니까요. 다만 이상한 건, 제가 그 가게에 쌓아온 10년이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는 거예요. 독일의 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사람이 사람으로 선다는 건 자기가 누구인지가 누군가에게 '아는 얼굴'로 되돌아올 때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걸 인정(Anerkennung), 그러니까 '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이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가게에는 매출도 재고도 다 기록되지만, '이 사람은 10년을 함께한 단골'이라고 적어둘 칸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 기억은 떠난 직원 한 사람의 머릿속에만 있었고, 그가 떠나자 저는 자연스럽게 다시 '처음 온 사람'이 된 거죠. 누가 저를 무시한 게 아니라, 저를 아는 사람으로 남겨둘 자리가 처음부터 없었던 겁니다.
저도 그날은 그냥 '직원이 바뀌었나 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다시 보기 시작하니까, 우리가 누군가에게 '아는 사람'으로 남는 일이 생각보다 얼마나 얇은 끈 위에 놓여 있는지 보이더라고요. 오늘 하루, 나를 '아는 얼굴'로 맞아준 사람이 있었다면 한번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얼굴이 되어준 적은 없었는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