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 들어가 키오스크 앞에 섭니다. 화면을 한 번 더 보려고 잠깐 멈췄을 뿐인데, 뒤에서 '밀려요' 하는 소리가 먼저 들려옵니다. 혹시, 그 앞에서 마음이 급해져 본 적 있으신가요?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그 키오스크는 분명 누구나 쓸 수 있게 거기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 있다'는 것과 '내가 쓸 수 있다'는 것은, 사실 다른 이야기입니다.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존엄이 자기 역량을 실제로 펼칠 자유에 있다고 말합니다. 기계가 놓여 있어도 한 박자 천천히 누를 여유가 없다면, '할 수 있음'은 그 사람에게 닿지 못한 채 화면 위에만 떠 있는 셈입니다. 누가 못된 게 아닙니다. 다만 그 자리에 '잠깐 멈춰도 되는 칸', '다른 방식으로 주문할 칸'이 처음부터 없었을 뿐입니다. 모두에게 열린 기계가, 모두에게 '할 수 있음'까지 열어준 건 아니었던 거죠.
저도 어제까진, 키오스크 앞에서 머뭇거리는 분을 보면 속으로 조금 답답해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다시 보기 시작하니까, 답답한 건 그 사람이 아니라 '천천히 해도 되는 자리'를 비워두지 않은 그 앞이었다는 게 보이더라고요. 오늘 하루, 무심코 '느리다'고 여겼던 한 장면을 잠깐 낯설게 다시 봐보세요. 거기 무엇을 놓을 자리가 빠져 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