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깨달음 · 오늘의 깨달음
역량

키오스크 앞에서 떠밀린 그 몇 초 — 떠밀린 게 정말 한 사람의 '느림'이었을까요?

식당에 들어가 키오스크 앞에 섭니다. 화면을 한 번 더 보려고 잠깐 멈췄을 뿐인데, 뒤에서 '밀려요' 하는 소리가 먼저 들려옵니다. 혹시, 그 앞에서 마음이 급해져 본 적 있으신가요?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그 키오스크는 분명 누구나 쓸 수 있게 거기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 있다'는 것과 '내가 쓸 수 있다'는 것은, 사실 다른 이야기입니다.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존엄이 자기 역량을 실제로 펼칠 자유에 있다고 말합니다. 기계가 놓여 있어도 한 박자 천천히 누를 여유가 없다면, '할 수 있음'은 그 사람에게 닿지 못한 채 화면 위에만 떠 있는 셈입니다. 누가 못된 게 아닙니다. 다만 그 자리에 '잠깐 멈춰도 되는 칸', '다른 방식으로 주문할 칸'이 처음부터 없었을 뿐입니다. 모두에게 열린 기계가, 모두에게 '할 수 있음'까지 열어준 건 아니었던 거죠.

저도 어제까진, 키오스크 앞에서 머뭇거리는 분을 보면 속으로 조금 답답해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다시 보기 시작하니까, 답답한 건 그 사람이 아니라 '천천히 해도 되는 자리'를 비워두지 않은 그 앞이었다는 게 보이더라고요. 오늘 하루, 무심코 '느리다'고 여겼던 한 장면을 잠깐 낯설게 다시 봐보세요. 거기 무엇을 놓을 자리가 빠져 있었는지.

오늘의 시선 —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 역량 접근법(Capability Approach) — 존엄은 자기 역량을 실제로 펼칠 자유에 있다 · 무언가가 '주어져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것을 실제로 할 수 있는 자유와 여건까지 갖춰질 때 비로소 존엄이라고 보는 시선입니다.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역량의 창조 (Creating Capabilities) · 마사 누스바움 · 2011

사람을 살필 때 '무엇을 가졌나'가 아니라 '무엇을 실제로 할 수 있나'를 먼저 물어야 한다고 말하는 책입니다.

키오스크가 거기 있다는 사실과, 그 앞에서 정말 주문할 수 있느냐 사이의 거리를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책이 좋은 길잡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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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질문

오늘 누군가를 '느리다'고 느낀 순간, 그 자리에 잠깐 멈춰도 되는 칸이 있었는지 한번 떠올려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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