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깨달음 · 오늘의 깨달음
목적성

창구에서 '번호'로 불린 그 몇 초 — 사라진 건, 정말 제 이름뿐이었을까요?

민원 창구에 앉아 차례를 기다립니다. 드디어 제 차례, 그런데 들려오는 건 제 이름이 아니라 '다음 번호요' 한마디입니다. 혹시, 익숙한 장면 아니신가요?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둘로 나눕니다. 마주 서서 '너'로 만나는 방식과, 처리할 '그것'으로 다루는 방식. 어려운 말 같지만, 앞사람을 한 사람으로 마주하느냐, 한 건의 업무로 넘기느냐의 차이입니다. 번호로 불리는 그 순간, 저는 만나야 할 '너'가 아니라 빠르게 처리될 한 건이 됩니다. 그런데 이건 그 직원이 차가워서가 아닙니다 — 그 창구의 구조 어디에도 '한 사람을 만나는' 칸이 설계돼 있지 않은 거죠. 빠르고 공정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 효율의 조건이 '아무도 사람으로 만나지 않는 것'이라면, 그건 질서가 아니라 사람이 사라진 자리일지도 모릅니다.

저도 어제까진 그냥, 빨리 끝나서 다행이다 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다시 보기 시작하니까, 하루 동안 제가 '번호'로 지나간 자리도, 또 제가 누군가를 '번호'로 넘긴 자리도 보이더라고요. 오늘 하루, 무심코 '다음 분' 하고 넘긴 한 장면을 잠깐 낯설게 다시 봐보세요. 거기, 만나지 못하고 지나친 한 사람이 있었는지.

오늘의 시선 —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나-너'와 '나-그것' — 사람을 도구(그것)로만 대하는 순간 마주함이 사라진다 · 앞에 선 사람을 마주 서서 만나야 할 '너'로 대하느냐, 그저 처리할 '그것'으로 다루느냐의 차이입니다.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나와 너 (Ich und Du) · 마르틴 부버 · 1923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참된 관계는 상대를 '그것'(처리할 대상)이 아니라 '너'(마주한 존재)로 만날 때 비로소 열린다고 말하는 책입니다.

번호로 불리던 그 창구의 순간을, '나-그것'이 '나-너'를 밀어낸 자리로 다시 보게 해주는 책입니다.

PPAI Lab · 게임 소개
BuddyDrop

친구랑 통화하면서 같이 블록을 떨어뜨리는 듀얼 블록 게임. 둘이 한 화면, 한 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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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질문

오늘 제가 누군가를 한 사람이 아니라 '한 건'으로 넘긴 순간은, 혹시 없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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