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깨달음 · 오늘의 깨달음
목적성

'회사를 네 일처럼' 여기라더니 — 정작 '내 일'을 정하는 자리는, 원래 거기 없었던 걸까요?

'우리 회사를 네 일처럼 생각하고 일해줘.' 이 말,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런데 막상 무언가를 정해야 할 땐, 늘 '그건 위에서 정한다'는 답이 돌아오죠. 혹시, 익숙한 장면 아니신가요?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주인처럼 일하라'는 말은, 사람을 귀하게 대하는 다정한 말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정작 무언가를 정할 자리가 없다면, 그 말이 청하는 건 '주인의 마음'일 뿐 '주인의 권한'은 아니에요. 철학자 칸트는 사람을 한낱 수단으로만 다루지 말고, 늘 목적으로도 대하라고 했습니다 — 사람은 무언가를 위한 도구이기 전에,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뜻이죠. 여기서 누가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닙니다. 다만 이 구조 안에는, 한 사람이 '정하는 사람'으로 들어설 칸이 처음부터 없었던 거예요. 마음은 주인만큼 내라면서 권한은 한 칸도 내주지 않을 때, 우리는 그 어긋남을 종종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덮곤 합니다.

저도 한동안은 그 말을 그냥 칭찬처럼 들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한번 다시 보기 시작하니까, '마음을 내라'는 말과 '자리를 내준다'는 말이 얼마나 다른지가 보이더라고요.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무심코 '네 일처럼'이라고 말하게 되거든, 그 사람 앞에 정말 '정할 자리'가 한 칸이라도 열려 있는지 가만히 다시 봐보세요.

오늘의 시선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목적의 정식 — 사람을 한낱 수단으로만 다루지 말 것, 늘 목적으로도 대하라 · 사람은 다른 무엇을 위한 도구이기 전에,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목적이라는 뜻입니다.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도덕형이상학 정초 · 임마누엘 칸트 · 1785

사람은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라는 것 — 도덕의 토대를 이 한 가지 원칙 위에 세우려 한 책입니다.

사람을 '실행하는 도구'로만 부리면서 '주인처럼'이라 부르는 말이 왜 어긋나는지, 이 책의 '목적의 정식'이 또렷하게 비춰 줍니다.

PPAI Lab · 소개
Cue

함께 한 주를 돌아보는 커플 다이어리. 우리가 안에 쓴 것만,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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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질문

오늘 '네 일처럼 하라'는 말을 듣거나 건넨 자리에, 정말 '정할 수 있는 칸'은 한 칸이라도 열려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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