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깨달음 · 오늘의 깨달음
역량

'글로 적어 오세요' — 막힌 건 그분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분을 받을 창구였을까요?

어느 창구 앞, 한 분이 수어로 용건을 차근차근 다 설명합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죄송하지만, 글로 적어서 다시 오세요'였어요. 혹시 이런 장면, 어디선가 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그분은 사실 '소통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수어로는 누구보다 정확하게 다 말할 수 있었으니까요. 못 한 건 그분이 아니라, 그 말을 받아 줄 창구가 거기 없었던 겁니다.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이걸 '역량'이라는 눈으로 봅니다 — 어떤 능력이 정말 그 사람의 것이 되려면, 그 능력이 사람 안에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걸 실제로 펼칠 수 있게 해 주는 바깥 조건까지 함께 갖춰져야 한다고요. 그러니까 존엄은 '할 줄 아느냐'가 아니라 '할 수 있게 길이 열려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누군가를 '못 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건, 그 사람의 부족이 아니라 그를 받을 칸이 빠진 설계일 때가 많습니다.

저도 예전엔 누가 뭔가를 못 해내면, 그냥 그 사람이 부족한가 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다시 보기 시작하니, 그 자리에 애초에 그 사람을 받을 길이 있었는지가 보이더라고요. 오늘 하루, '저 사람은 왜 저걸 못 하지' 싶은 장면을 만나면, 잠깐만 낯설게 다시 봐보세요 — 못 한 게 사람인지, 아니면 자리가 빠져 있던 건지.

오늘의 시선 —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 역량 접근법 — 존엄은 자기 역량을 실제로 펼칠 자유에 있다 · 어떤 능력이 진짜 내 것이 되려면, 내 안에 있는 능력만으로는 부족하고 그걸 실제로 펼치게 해 주는 바깥 조건까지 갖춰져 있어야 한다는 시선입니다.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역량의 창조 (Creating Capabilities) · 마사 누스바움 · 2011

존엄한 삶이란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하고 무엇이 될 수 있는지, 그 진짜 자유의 폭으로 봐야 한다고 말하는 책입니다.

오늘 장면처럼 능력은 있는데 펼칠 길이 막혀 있을 때, 빠진 건 사람의 자질이 아니라 그 능력을 살려 줄 조건이라는 걸 또렷하게 보여 줍니다.

PPAI Lab · 게임 소개
BuddyDrop

친구랑 통화하면서 같이 블록을 떨어뜨리는 듀얼 블록 게임. 둘이 한 화면, 한 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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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질문

오늘 누군가가 무언가를 '못 하는' 것처럼 보였다면, 정말 그 사람이 못한 걸까요, 아니면 그를 받아 줄 자리가 빠져 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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