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다시 출근한 첫날. 예전에 제가 맡던 큰 일들은 어느새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 있고, 저한테는 '이제 무리하지 말고 편한 것만 해요'라는 말이 돌아옵니다. 혹시, 낯익은 장면 아니신가요?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편한 일만 맡긴다'는 건, 분명 배려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몸 상하지 말라고, 무리하지 말라고요. 그런데 인도의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의 존엄은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그걸로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자유에 있다고요. 자리는 그대로 남아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의 목록이 하나둘 조용히 지워지면, 끝내 남는 건 자리뿐입니다. 그래서 다정하게 건네진 '편한 일'이, 어떤 날엔 '당신이 할 수 있는 걸 굳이 펼치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들리기도 합니다. 배려의 조건이 '할 수 있는 걸 접어두는 것'이라면, 그건 배려가 아니라 자유가 설 자리를 대신 정해버린 일일지도 모릅니다.
저도 예전엔, 누가 '편한 일 하세요' 하면 고마운 마음부터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다시 보기 시작하니까, 그 다정함 뒤에서 조용히 접히던 게 무엇이었는지 보이더라고요.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혹은 나 자신에게 건넨 '편하게 해'라는 말 한마디를, 잠깐 낯설게 다시 봐보세요. 그 안에서 무엇이 함께 접혔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