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깨달음 · 오늘의 깨달음
목적성

한 시간 기다린 진료가 20초 만에 끝났는데, 정작 서운했던 건 그 짧은 시간이 아니었어요.

한 시간을 기다려 진료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모니터만 보시더니, 20초 만에 '네, 괜찮네요' 하고 끝내셨어요. 이런 진료, 한 번쯤 받아 보신 적 있으실 거예요.

그 20초를 우리는 흔히 '너무 짧다'고만 여깁니다. 그런데 짧았던 것보다, 그 시간 내내 선생님의 눈이 사람이 아니라 모니터 속 수치에만 머물러 있었다는 게 더 마음에 남더라고요.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우리가 누군가를 두 가지 방식으로 만난다고 했습니다. 마주 앉은 이를 하나의 존재로 대하는 '나-너', 그리고 처리해야 할 대상으로만 다루는 '나-그것'. 검사 수치는 '그것'이고, 그 수치를 안고 들어온 사람은 '너'인데, 그 20초가 만난 건 수치였지 사람이 아니었던 셈이죠. 어쩌면 그 선생님도 3분 뒤 다음 환자가 문 앞에 선 진료실 안에서, 누군가를 '너'로 마주할 시간을 애초에 건네받지 못한 건지도 모릅니다.

저도 그 20초가 그저 야속하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부버의 말을 곱씹고 나니, 제가 서운했던 건 진료가 짧아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끝내 '한 사람'으로 마주 앉지 못해서였더라고요. 그날 이후로 저는, 누군가를 앞에 두고도 얼굴이 아니라 용건만 바라본 적은 없었는지, 문득 저를 돌아보게 됐어요.

오늘의 시선 —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나-너'와 '나-그것' — 사람을 도구(그것)로만 대하는 순간 참된 관계가 사라진다 · 누군가를 '처리할 대상(그것)'으로 대하면 그 사람과의 참된 만남은 사라지고, '마주하는 존재(너)'로 대할 때에야 비로소 진짜 만남이 열린다는 뜻입니다.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나와 너 (Ich und Du) ·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 1923

사람을 '그것(대상)'이 아니라 '너(마주하는 존재)'로 대할 때에야 비로소 참된 만남이 시작된다고 말하는 책입니다.

진료실의 그 20초를 '나-그것'과 '나-너'라는 두 만남의 방식으로 다시 들여다보고 싶을 때 펼쳐볼 만한 책입니다.

PPAI Lab · 소개
Calypso

매일 아침 한 편, 4분의 뒷이야기. 도움은 안 되지만 그냥 읽어보면 재밌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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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질문

오늘 저와 마주 앉았던 사람들 가운데, 제가 '너'가 아니라 '용건'으로만 대하고 지나친 사람은 없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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