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에 들어가기 전, 휴대폰을 꺼내 녹음 버튼을 한 번 누릅니다. 화면에 빨간 점이 켜지고 나서야 문을 엽니다. 언제부턴가 이런 순서가 생겼다는 이야기, 한 번쯤 스쳐 들어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빨간 점 하나에 잠깐 눈을 두어 보겠습니다. 녹음은 보통 남겨 두고 싶은 걸 담으려고 켭니다. 그런데 이 손은 좋은 걸 남기려는 게 아니라,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증거를 미리 챙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은 '품위 있는 사회'를 이야기하며, 좋은 사회를 사람들이 서로 친절한 사회가 아니라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개인이 각자 조심하고 각자 견디지 않아도 되도록 그 방 자체가 사람을 지켜 주는 곳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장면에서 비어 있는 건 바로 그 자리입니다 — 회의실 안에서 누가 무슨 말을 듣더라도 괜찮도록 지켜 줄 규칙이 없으니, 한 사람이 스스로 녹음기를 들어 제 방패를 만든 겁니다. 방이 맡았어야 할 일을, 한 사람의 휴대폰이 대신 떠안고 있는 셈입니다.
녹음 버튼을 켜는 손이 조심스러운 건, 그 사람이 유난스러워서가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혼자 대비해야 하는 방이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 누군가 들어서는 어느 방에는, 사람이 스스로 방패를 들지 않아도 되도록 지켜 주는 규칙이 몇이나 켜져 있을까요. 빨간 점이 대신 켜지기 전에 먼저 보이는 게 그 자리라면, 하루가 조금 달라질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