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깨달음 · 오늘의 깨달음
인정

아이디어는 회의 전 제 자리에서 나왔는데, 칭찬은 회의가 시작되자 다른 자리로 갔습니다.

회의 시작 전, 제가 툭 꺼낸 아이디어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회의가 시작되자, 윗사람이 그걸 자기 생각인 것처럼 보고하더라고요. 좋은 아이디어라는 칭찬도, 그 자리에서 그분이 받았습니다.

이 장면에서 아이디어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회의에서 멀쩡히 쓰였고, 좋은 평가까지 받았으니까요. 다만 그 아이디어가 '누구에게서 나왔는가'를 되짚는 자리에서, 처음 그 말을 꺼낸 사람은 조용히 빠져 있습니다. 찰스 테일러는 사람이 '나'로 서는 일을, 내가 한 것이 남을 거쳐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그 주고받음 속에서 봤습니다 — 정체성은 홀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누군가 나를 알아봐 줄 때 비로소 모양을 갖춘다는 것이죠. 그렇게 보면 이 회의실에 비어 있던 건 아이디어가 아니라, 그것을 '누가 처음 냈는지' 되돌려 놓을 자리였습니다. 일이 매끄럽게 굴러갈수록, 그 출처를 적어 둘 칸은 오히려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오늘 잘 굴러간 어떤 일을 떠올려 보면, 그 일이 시작된 첫 자리는 의외로 잘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누구의 공을 따지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매끄럽게 지나간 그 일 어딘가에, 처음 그 말을 꺼낸 사람의 이름이 들어설 자리가 비어 있진 않았는지. 그 빈자리 하나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합니다.

오늘의 시선 —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 인정의 정치 — 우리는 타인의 인정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빚는다 · 내가 한 일과 나라는 사람은, 남이 그걸 알아보고 나에게 돌려줄 때 비로소 또렷해집니다 — 정체성은 홀로가 아니라 주고받음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불안한 현대 사회 (The Malaise of Modernity)》 · 찰스 테일러 · 1991

이 책은 진짜 '나다움'조차 홀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남과 주고받는 말과 인정 속에서 빚어진다고 말합니다.

오늘 장면에서 비어 있던 '누가 처음 냈는지 돌려놓을 자리'를, 이 책은 사람이 사람으로 서는 데 없어선 안 될 조건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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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ypso

매일 아침 한 편, 4분의 뒷이야기. 도움은 안 되지만 그냥 읽어보면 재밌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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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질문

오늘 내 손을 거쳐 간 일들 중에, 정작 처음 시작한 사람의 이름이 빠진 자리는 없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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