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너머의 한 사람이 '해결될 때까지 끊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목소리는 시종 정중하고, 언성 한 번 높이지 않습니다. 다만 그 통화는 두 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습니다.
정중했다는 그 두 시간에서 정작 흐릿한 것은, 그 예의가 누구를 향했느냐입니다. 오간 문장은 분명 예의 바른 문장이었는데, 그 예의는 전화를 받은 한 사람이 아니라 전화를 받는 '창구'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나-너'와 '나-그것'으로 갈라 봤습니다 — 마주 선 한 사람(너)으로 대하느냐, 내 용무를 처리해 주는 무엇(그것)으로 대하느냐. 이 자리에 비어 있는 것은, 수화기 저편에도 끝나는 하루가 있고 견디는 몸이 있다는 사실이 들어설 칸입니다. '끊지 않겠다'는 말 앞에는, 상대 역시 먼저 끊을 수 있는 한 사람이라는 자리가 애초에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언성이 없어 조용했을 뿐, 그 조용함 안에도 사람을 도구로 세워 둔 빈자리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정중한 말이 오갔다고 해서, 그 자리에 사람이 마주 서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부탁이든 요구든, 오늘 누군가에게 건넨 말 하나가 마주 선 '너'에게 가 닿았는지, 아니면 그저 용무를 처리하는 '무엇'에게 갔는지 — 그 한 뼘의 차이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오늘 하루가 저물기 전에 조용히 물어볼 수 있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