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일해 보려고 마음먹은 날이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마주한 자리에서 먼저 읽힌 건,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못 하는지'의 목록이었어요. 그런데 이 순서가, 어쩐지 익숙합니다.
못 하는 것, 비어 있던 기간, 안 해 본 일 — 이런 항목엔 적을 자리가 줄줄이 마련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사람이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적을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은 한 사람의 자유를, 그가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로 봤습니다 — 가진 것의 목록이 아니라,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의 폭으로요. 그 시선으로 이 장면을 보면, 못 하는 것의 목록은 길게 채워졌는데 할 수 있는 것을 물어볼 칸 하나가 통째로 비어 있는 셈입니다. 사람을 결핍의 목록으로 읽어 내려가는 동안, 정작 그 사람을 사람으로 서게 하는 가능성은 한 번도 펼쳐지지 않습니다. 빠진 건 능력이 아니라, 그 능력을 물어볼 자리였습니다.
누군가를 앞에 두면 우리는 종종 못 하는 것부터 셈해 봅니다. 그 셈이 끝나기 전에, '그래서 이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오늘 한 번이라도 자리를 얻었는지 돌아봅니다. 결핍의 목록 뒤편에는, 미처 펼쳐 보지 못한 가능성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