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뭐 하나 막히면 다들 저한테 먼저 물으러 왔어요. 그런데 정년이 가까워진 요즘은, 하루가 다 가도록 저를 찾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들 저 말고 다른 데로 묻더라고요.
하루가 다 가도록 누구도 찾지 않았다는 그 말 안에는, 실은 물음들이 대신 향한 다른 목적지가 숨어 있습니다. 이제 그 물음은 매뉴얼로, 검색창으로, 새로 온 담당자에게로 갑니다. 한때는 그 물음이 전부 한 사람에게 모이던 때가 있었죠 — 뭐가 막히면 '그건 저분한테' 하던 시절요. 헤겔은 사람의 자기의식이 혼자 서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알아봐 줄 때 비로소 선다고 했습니다(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내가 아는 사람'이라는 자리도 마찬가지여서, 누군가 찾아와 물어 줄 때마다 매번 새로 세워지는 자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조직에는, 오래 쌓인 그 앎을 '지금도 물어도 되는 것'으로 계속 걸어 두는 칸이 없습니다. 앎은 그대로인데, 그것이 놓일 자리가 정년을 앞두고 슬그머니 닫혀 버리는 셈이죠.
물음이 끊긴 자리는 소리가 없어서, 무엇이 닫혔는지 좀처럼 표가 나지 않습니다. 그 자리를 여는 것도 닫는 것도 규정이 아니라, 누구를 아직 물어도 되는 사람으로 남겨 두느냐 하는, 잘 보이지 않는 선택 쪽에 더 가깝습니다. 무언가 막혀 어딘가로 발길을 옮기려는 그 짧은 순간에 잠깐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 얼굴이 곧 아직 닫히지 않은 한 자리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