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진료실 앞, 한참을 기다립니다. 문이 열리고 '3번 환자분, 들어오세요'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별생각 없이 일어나 들어가신 적, 혹시 있으신가요?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번호로 불리는 게 꼭 무례해서가 아닙니다. 바쁜 진료실에서 순서를 정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 뿐이죠. 칸트는 사람을 대하는 두 가지 방식을 나눠 봤습니다. 누군가를 일을 처리하기 위한 '통과 지점'으로만 대하는가, 아니면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한 사람으로 대하는가. 칸트가 말한 목적의 정식이란, 사람을 어떤 목적을 위한 도구로만 다루지 말고 언제나 그 사람 자체를 목적으로도 대하라는 이야기입니다. '3번'이라는 호명이 불편한 건, 그 한 글자 안에 제 이름도, 제가 왜 아픈지도, 제가 어떤 사람인지도 들어갈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잘못한 사람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저 그 시스템에는 '한 사람'이 들어설 칸이 처음부터 없었던 거죠.
저도 어제까진 그냥 번호에 맞춰 일어나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다시 보기 시작하니까, 제가 하루 중 얼마나 자주 '몇 번'으로 지나가고 있었는지가 보이더라고요. 오늘 하루, 무심코 번호로 불리고 번호로 지나간 순간 하나를 잠깐 낯설게 다시 봐보세요. 거기 '저'라는 사람이 들어설 자리가 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