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깨달음 · 오늘의 깨달음
목적성

'주인의식 갖고 일할 분'을 찾는다면서, 정작 주인 자리는 왜 안 줄까요?

채용 공고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주인의식을 갖고, 회사를 내 일처럼 여기실 분.' 면접에서도 비슷한 말을 듣습니다. 혹시,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문장 아니신가요?

그런데 이 문장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회사를 내 일처럼 여기라'는 건, 회사의 목적을 내 목적으로 삼아 달라는 부탁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 일의 결정권도, 돌아오는 몫도, 끝나고 남는 이름도 내 것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칸트는 사람을 대하는 한 가지 원칙을 이렇게 남겼습니다 — 누군가를 한낱 수단으로만 쓰지 말고, 언제나 동시에 그 자체로 목적인 사람으로 대하라고요.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건 목적을 떠안으라는 뜻인데, 정작 그 사람이 '주인'으로 앉을 자리는 어디에도 만들어져 있지 않습니다. 누가 나빠서가 아니라, 시스템에 그 칸이 처음부터 비어 있는 거죠. '내 일처럼 일하라'는 요구가 끝내 그 일을 내 것으로 만들어 주지 않을 때, 그건 주인의식이 아니라 주인 없는 책임일지도 모릅니다.

저도 어제까진 '주인의식'이라는 말을 그냥 좋은 말로 흘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다시 보기 시작하니까, 그 말이 누구에게 책임을 옮겨 두고 있는지가 보이더라고요. 오늘 하루, 무심코 '내 일처럼'이라고 말했거나 들었던 순간을 잠깐 낯설게 다시 봐보세요. 거기서 책임만 건너왔는지, 자리도 함께 왔는지.

오늘의 시선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목적의 정식 — 인간을 한낱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 것 · 사람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도구로만 쓰여서는 안 되고,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목적이라는 원칙입니다. 일을 맡길 수는 있어도, 사람을 '쓰고 비우는 수단'으로만 다뤄선 안 된다는 뜻이지요.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피로사회 (Müdigkeitsgesellschaft) · 한병철 · 2010

외부의 감시자가 사라진 시대에, 사람은 스스로를 다그치는 '성과의 주체'가 되어 자기 자신을 소진시킨다는 이야기입니다.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요구가 어떻게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자기 책임으로 바뀌는지, 그 다음 장면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곁에 두기 좋은 책입니다.

PPAI Lab · 소개
Cue

함께 한 주를 돌아보는 커플 다이어리. 우리가 안에 쓴 것만,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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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질문

오늘 누군가에게 '내 일처럼 해 달라'고 부탁했거나 그런 말을 들었다면 — 거기엔 책임만 건너왔나요, 아니면 주인의 자리도 함께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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