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가 이런 말, 한 번쯤 들어 보셨을 겁니다.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아.' 큰일도 아니라는 듯 툭 지나가는 한마디죠. 혹시, 익숙한 장면 아니신가요?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그 말이 아픈 건, 정말로 나를 대신할 사람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사람을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기능'으로 보는 셈법 자체가, 거기 있던 한 사람을 통째로 빠뜨리기 때문입니다. 칸트는 이걸 '목적의 정식'이라고 불렀습니다 — 사람을 어떤 목적을 위한 도구로'만' 다루지 말고, 그 자체로 목적인 존재로 대하라는 겁니다. 말한 사람이 못돼서가 아니라, 그 자리를 채우는 시스템엔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적는 칸은 있어도 '왜 하필 이 사람이었는가'를 적는 칸이 없는 거죠. 자리는 바꿀 수 있어도, 거기 있던 한 사람은 원래 누구로도 대신되지 않습니다.
저도 어제까진 그 말을 그냥 흘려들었습니다. 그런데 한번 이렇게 다시 보기 시작하니까, 안 보이던 게 보이더라고요. 오늘 하루, 누군가를 '아무나'로 스쳐 지났거나 제가 '아무나'로 스쳐졌던 장면이 있었는지, 잠깐 낯설게 다시 봐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