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친척들이 둥글게 둘러앉은 자리에서 부모님이 제 성적표를 꺼내 펼쳐 보입니다. 칭찬이든 한숨이든, 그 종이 한 장이 식탁 위에 올라옵니다. 혹시, 비슷한 자리에 앉아 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부모님은 분명 저를 사랑해서, 자랑하고 싶어서 그러셨을 겁니다. 미워서 그런 게 아니죠. 그런데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은 '품위 있는 사회'를 이렇게 말합니다 — 그 안의 제도와 관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라고요. 여기서 모욕이란 누가 화를 내거나 욕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을 온전한 한 사람이 아니라, 펼쳐서 보여주고 비교하는 '대상'으로 다룰 때 조용히 생깁니다. '자식 자랑'이라는 익숙한 의례에는, 정작 그 성적표의 주인이 '보여줘도 될까요?' 하고 물어볼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사랑이 가득한 자리인데도, 한 사람의 동의가 들어갈 칸은 처음부터 없었던 거죠.
저도 어제까진, 그 자리를 그냥 '사랑 표현'으로만 기억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다시 보기 시작하니까, 사랑과 모욕이 같은 식탁에 나란히 앉아 있을 수도 있다는 게 보이더라고요. 오늘 하루,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으로 했던 말이나 행동 하나를 잠깐 낯설게 다시 봐보세요. 거기, 그 사람에게 '물어보는 자리'가 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