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자리에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패기가 없다'는 말이 나옵니다. 분위기가 풀리고, 다들 웃습니다. 혹시, 그 자리에서 같이 웃으신 적 있으신가요?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그 웃음이 번지는 순간, 테이블에 앉은 '젊은 사람'은 한 명 한 명의 얼굴이 아니라 '요즘 애들'이라는 한 덩어리가 됩니다. 어제 밤늦게 맞춘 마감도, 조용히 메워 둔 빈자리도, 그 한마디 안에서는 보이지 않게 되죠. 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사람이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서는 건 자기가 한 일과 자기 존재가 누군가에게 '제대로 보이고 받아들여질' 때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걸 인정(Anerkennung)이라 불렀는데, 거꾸로 한 사람이 한 부류로 뭉뚱그려질 때 그 인정은 조용히 사라집니다. 누가 못돼서가 아닙니다 — 그 테이블에는 애초에 '한 사람'으로 앉을 자리가 마련돼 있지 않았던 거죠. 화기애애해 보이죠. 그런데 그 화기애애함의 조건이 누군가가 잠깐 '얼굴'을 내려놓는 것이라면, 그건 화목이 아니라 익숙해진 위계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저도 어제까진 그냥 같이 웃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다시 보기 시작하니까, 그 웃음 끝에서 잠깐 지워졌던 얼굴들이 보이더라고요. 오늘 하루, 무심코 같이 웃었던 장면 하나를 잠깐 낯설게 다시 봐보세요. 그 웃음 안에서, 누구의 얼굴이 잠깐 지워졌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