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문이 살짝 열려 있습니다. 무슨 검사 결과인지, 어떤 병명인지가 복도 의자에 앉은 사람들에게까지 들립니다. 혹시, 나만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어느새 다 같이 듣는 이야기가 돼버린 적, 있으신가요?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문을 닫지 않은 분이 무심했던 걸까요? 꼭 그렇진 않습니다. 의사 선생님도 간호사 선생님도 다정했을 수 있어요.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은, 구성원들이 서로 예의 바른 사회와, 제도 자체가 사람을 깎아내리지 않는 사회를 나눠서 봅니다. 사람은 친절한데 제도엔 '조용히 들을 자리'가 없을 때가 있다는 거죠. 병명이 복도까지 흐른 건 누가 모질어서가 아니라, 그 공간에 '내 이야기를 나만 듣게 둘 칸'이 처음부터 설계돼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작아지게 만드는 건 종종 누군가의 표정이 아니라, 활짝 열린 문틈에서 조용히 새어 나옵니다.
저도 예전엔 그런 장면을 보면 '바빠서 그렇지 뭐' 하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다시 보기 시작하니까, 친절한 사람과 사람을 지켜주는 제도가 늘 같은 게 아니라는 게 보이더라고요. 오늘 하루, 누군가의 사정이 본인 뜻과 상관없이 흘러나오던 장면 하나를 잠깐 낯설게 다시 봐보세요. 그 자리에 '조용히 들을 칸'이 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