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깨달음 · 오늘의 깨달음
비모욕

복도까지 들린 제 병명 — 그건 누군가의 실수였을까요, 아니면 원래 '조용히 들을 자리'가 없어서였을까요?

병원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문이 살짝 열려 있습니다. 무슨 검사 결과인지, 어떤 병명인지가 복도 의자에 앉은 사람들에게까지 들립니다. 혹시, 나만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어느새 다 같이 듣는 이야기가 돼버린 적, 있으신가요?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문을 닫지 않은 분이 무심했던 걸까요? 꼭 그렇진 않습니다. 의사 선생님도 간호사 선생님도 다정했을 수 있어요.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은, 구성원들이 서로 예의 바른 사회와, 제도 자체가 사람을 깎아내리지 않는 사회를 나눠서 봅니다. 사람은 친절한데 제도엔 '조용히 들을 자리'가 없을 때가 있다는 거죠. 병명이 복도까지 흐른 건 누가 모질어서가 아니라, 그 공간에 '내 이야기를 나만 듣게 둘 칸'이 처음부터 설계돼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작아지게 만드는 건 종종 누군가의 표정이 아니라, 활짝 열린 문틈에서 조용히 새어 나옵니다.

저도 예전엔 그런 장면을 보면 '바빠서 그렇지 뭐' 하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다시 보기 시작하니까, 친절한 사람과 사람을 지켜주는 제도가 늘 같은 게 아니라는 게 보이더라고요. 오늘 하루, 누군가의 사정이 본인 뜻과 상관없이 흘러나오던 장면 하나를 잠깐 낯설게 다시 봐보세요. 그 자리에 '조용히 들을 칸'이 있었는지.

오늘의 시선 — 아비샤이 마갈릿(Avishai Margalit): 품위 있는 사회 —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 · 사람들이 서로 예의 바른 것을 넘어, 제도와 시스템 자체가 사람을 깎아내리거나 부끄럽게 만들지 않는 사회를 뜻합니다.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품위 있는 사회 (The Decent Society) · 아비샤이 마갈릿 · 1996

좋은 사회의 기준을 '구성원들이 서로 모욕하지 않는 것'을 넘어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것'에서 찾자고 제안하는 책입니다.

친절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제도가 사람을 작아지게 만드는 순간을,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로 다시 들여다보고 싶다면 좋은 길잡이가 됩니다.

PPAI Lab · 게임 소개
BuddyDrop

친구랑 통화하면서 같이 블록을 떨어뜨리는 듀얼 블록 게임. 둘이 한 화면, 한 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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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질문

오늘 제 곁에서 누군가의 사정이 본인 뜻과 상관없이 새어 나간 순간, 그건 누군가의 무례였을까요 아니면 '조용히 들을 자리'가 없어서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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