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습니다. '관리비 미납 세대'라는 제목 아래로, 호수들이 줄줄이 적혀 있고요. 그 명단에서 익숙한 번호를 본 적, 혹시 있으신가요?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관리비를 걷는 일은 당연하고, 그 명단을 붙인 분도 그저 맡은 일을 했을 뿐입니다. 누구도 모욕을 주려던 건 아니에요. 그런데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형편이 서로 다른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상대의 자존을 깎지 않으면서 함께 살 수 있을까. 그는 그걸 '존중'이라고 불렀는데요, 돈이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어려운 처지의 사람도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 장면에서 빠진 게 바로 그 자리예요. 그 종이엔 '납부'와 '미납'을 적는 칸은 있어도, '이 집이 지금 좀 어렵구나' 하고 조용히 물어볼 칸은 없습니다. 사정을 따로 전할 통로가 있었다면 같은 일도 명단이 아니라 한 통의 안내였을 텐데, 시스템이 효율만 남기고 체면을 둘 자리를 지우면 곤란은 그렇게 벽에 걸립니다.
저도 예전엔 그런 명단을 보면 그냥 '누가 또 밀렸나 보다' 하고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다시 보기 시작하니까, 그 종이 한 장이 누군가에겐 매일 오르내려야 하는 벽이었겠구나 싶더라고요. 오늘 하루, 효율을 위해 누군가의 사정이 그냥 벽에 걸려 버린 장면은 없었는지, 잠깐 낯설게 다시 봐보셔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