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깨달음 · 오늘의 깨달음
인정

짐은 제가 들었는데, '고맙다'는 옆 사람이 받았습니다 — 그 인사는 왜 길을 잘못 들었을까요?

버스에서 어르신께 자리를 양보하고, 무거운 짐까지 받아 선반에 올려 드렸습니다. 그런데 '고맙습니다' 하는 인사는, 제 옆에 서 있던 다른 분이 받으시더라고요. 혹시, 비슷한 순간 겪어 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보통은 '뭐, 인사 한 번 잘못 간 거지' 하고 그냥 넘깁니다. 그런데 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사람은 혼자 힘으로 '내가 누구다'를 정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봐 주는 그 자리 안에서 자기 모습을 갖춰 간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 짧은 순간, 짐을 든 사람이 누구였는지 읽히지 않은 건 누가 무심해서라기보다, 장면을 빠르게 훑는 눈에 '실제로 그 일을 한 사람'이 들어설 칸이 애초에 없었던 겁니다. 낯선 사람들 사이의 짧은 장면은, 흔히 '그 자리에 어울려 보이는 사람'에게 인사를 돌려보내거든요. 한 일은 분명 거기 있었는데, 그 일을 한 사람만 그림에서 슬쩍 지워진 거죠. 누가 못돼서가 아니라, 우리가 장면을 읽는 방식 자체에 그 사람을 위한 자리가 비어 있었던 겁니다.

저도 어제까진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그냥 웃어넘겼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다시 보기 시작하니까, 정작 제가 누군가에게 고맙다고 말할 때 그 일을 한 사람을 제대로 보고 있었나, 그게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오늘 하루, 제가 건넨 '고맙습니다'가 정말 그 일을 한 사람에게 가 닿았는지, 잠깐 낯설게 다시 봐보시는 건 어떨까요.

오늘의 시선 —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 인정의 정치 — 우리는 타인의 인정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빚는다 · 사람은 혼자서 '내가 누구다'를 정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봐 주는 그 관계 안에서 자기 모습을 갖춰 간다는 뜻입니다.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불안한 현대 사회 (The Malaise of Modernity / The Ethics of Authenticity) · 찰스 테일러 · 1991

진정한 나다움은 혼자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인정 속에서 비로소 빚어진다고 말하는 책입니다.

오늘 버스에서처럼, 한 사람이 한 일이 누구의 것으로도 돌아오지 않을 때 무엇이 빠져 있는지를 이 책의 시선으로 더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PPAI Lab · 소개
Calypso

매일 아침 한 편, 4분의 뒷이야기. 도움은 안 되지만 그냥 읽어보면 재밌는 거.

자세히 보기 →
오늘의 질문

오늘 제가 누군가에게 건넨 '고맙습니다'는, 정말 그 일을 한 사람에게 가 닿았을까요?

🎬 영상으로 보기📝 블로그에서 풀버전 읽기

내 책갈피 보기 →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