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창구 앞, 한 분이 수어로 용건을 차근차근 다 설명합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죄송하지만, 글로 적어서 다시 오세요'였어요. 혹시 이런 장면, 어디선가 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다르게 봐볼게요. 그분은 사실 '소통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수어로는 누구보다 정확하게 다 말할 수 있었으니까요. 못 한 건 그분이 아니라, 그 말을 받아 줄 창구가 거기 없었던 겁니다.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이걸 '역량'이라는 눈으로 봅니다 — 어떤 능력이 정말 그 사람의 것이 되려면, 그 능력이 사람 안에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걸 실제로 펼칠 수 있게 해 주는 바깥 조건까지 함께 갖춰져야 한다고요. 그러니까 존엄은 '할 줄 아느냐'가 아니라 '할 수 있게 길이 열려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누군가를 '못 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건, 그 사람의 부족이 아니라 그를 받을 칸이 빠진 설계일 때가 많습니다.
저도 예전엔 누가 뭔가를 못 해내면, 그냥 그 사람이 부족한가 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다시 보기 시작하니, 그 자리에 애초에 그 사람을 받을 길이 있었는지가 보이더라고요. 오늘 하루, '저 사람은 왜 저걸 못 하지' 싶은 장면을 만나면, 잠깐만 낯설게 다시 봐보세요 — 못 한 게 사람인지, 아니면 자리가 빠져 있던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