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을 기다려 진료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모니터만 보시더니, 20초 만에 '네, 괜찮네요' 하고 끝내셨어요. 이런 진료, 한 번쯤 받아 보신 적 있으실 거예요.
그 20초를 우리는 흔히 '너무 짧다'고만 여깁니다. 그런데 짧았던 것보다, 그 시간 내내 선생님의 눈이 사람이 아니라 모니터 속 수치에만 머물러 있었다는 게 더 마음에 남더라고요.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우리가 누군가를 두 가지 방식으로 만난다고 했습니다. 마주 앉은 이를 하나의 존재로 대하는 '나-너', 그리고 처리해야 할 대상으로만 다루는 '나-그것'. 검사 수치는 '그것'이고, 그 수치를 안고 들어온 사람은 '너'인데, 그 20초가 만난 건 수치였지 사람이 아니었던 셈이죠. 어쩌면 그 선생님도 3분 뒤 다음 환자가 문 앞에 선 진료실 안에서, 누군가를 '너'로 마주할 시간을 애초에 건네받지 못한 건지도 모릅니다.
저도 그 20초가 그저 야속하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부버의 말을 곱씹고 나니, 제가 서운했던 건 진료가 짧아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끝내 '한 사람'으로 마주 앉지 못해서였더라고요. 그날 이후로 저는, 누군가를 앞에 두고도 얼굴이 아니라 용건만 바라본 적은 없었는지, 문득 저를 돌아보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