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을 벼르다 서류 봉투까지 챙겨 구청에 가신 분이 있습니다. 돌아온 답은 '그 민원은 이제 앱으로만 접수됩니다'였고, 그 앱을 깔 줄 몰라 그대로 돌아 나오셨다고 해요. 어쩐지 낯설지 않은 뒷모습입니다.
'앱으로만 됩니다'라는 안내에서, 저는 '됩니다'라는 말에 자꾸 걸렸습니다. 되긴 됩니다 — 그 앱을 깔 수 있고, 화면의 말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에게는요.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은 무엇이 주어져 있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이 그것으로 실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자유'라고 불렀습니다. 같은 앱이 누군가에겐 지름길이고 누군가에겐 벽이라면, 서비스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모두에게 열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뜻이지요. 그날 그분이 모자랐던 게 아니라, '열려 있음'의 기준이 처음부터 어떤 손에는 맞춰져 있지 않았던 건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쉽게'의 '누구나'가, 이미 할 줄 아는 사람들의 목록일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 앱쯤 3분이면 깝니다. 그래서 그게 누군가에겐 벽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게 3분인 일이 어떤 분께는 발길을 돌리는 일이었다는 걸 알고 나니, '요즘은 다 앱으로 되니까 편하잖아요'라는 말이 예전처럼 가볍게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 '편하다' 뒤에 서 있던 뒷모습 하나를, 오늘은 저도 처음으로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