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에 사람이 좀 부족하다며, '자리 좀 채워 달라'는 연락을 받고 나갑니다. 시키는 대로 앉아 박수를 치고, 단체 사진에도 들어가고요. 그러다 행사가 끝나자 '이제 가셔도 됩니다'라는 말과 함께, 참석자 명단에서 한 줄이 조용히 지워집니다.
이 장면에선 순서가 하나 눈에 띕니다. 사람에게 '가셔도 된다'는 말이 나온 때가, 하필 머릿수가 다 채워진 바로 다음이었다는 것 — 그 전에는 나오지 않던 말입니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두 가지로 나눠 봤습니다. 마주 선 상대를 그 자체로 만나는 '나-너', 그리고 상대를 어딘가에 쓸 도구로 대하는 '나-그것'. '그것'으로 대하는 관계에는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쓸 일이 끝나면, 관계도 같이 끝난다는 것. 그러니 이 장면에서 비어 있는 건 고맙다는 인사나 사례비가 아닙니다. 명단에는 '머릿수를 채울 칸'은 있었지만, '와 준 사람이 남을 칸'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 — 그게 빈자리입니다. 채우려고 부른 자리는, 다 채워지는 바로 그 순간 사라지도록 되어 있었던 셈입니다.
부름에는 두 가지가 담깁니다. 그가 해줄 몫, 그리고 그 몫이 끝난 뒤에도 그가 머물 자리. 앞의 것만 챙기고 뒤의 것을 비워 두면, 사람은 일이 끝나는 순간 명단과 함께 지워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누군가를 부르는 자리에는, 뒤의 것도 함께 놓여 있을까요. 오늘 그 빈 쪽을 한 번 들여다볼 수 있다면, 지워질 이름 하나쯤은 그 자리에 남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