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짜리 회의를 통역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옮깁니다. 며칠 뒤 회의록이 메일로 도착합니다. 일시, 장소, 참석자, 발언 요약까지 빠짐없이 적혀 있는데, 그 말을 옮긴 사람 이야기만 한 줄도 없습니다.
그 회의록을 위에서 아래로 훑으면 칸이 넷입니다. 일시, 장소, 참석자, 발언. 빠진 게 이름 하나뿐이라면 다음번에 한 줄 적어 넣으면 그만인데, 넷 어디를 봐도 그 이름을 적어 넣을 자리가 없습니다. 헤겔은 사람의 자기의식이 서로를 알아볼 때에야 비로소 선다고 봤습니다 — 알아봄이 한쪽으로만 흐르면 그 알아봄은 반쪽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날 회의에서 두 편은 분명 서로를 알아봤습니다. 다만 그 알아봄은 가운데를 지나 건너갔고, 지나온 자리에는 아무 표시도 남지 않았습니다. 말은 전부 기록되었는데 그 말을 건너오게 한 손은 기록의 바깥에 있었던 셈이고, 비어 있는 건 이름 하나가 아니라 이름이 놓일 칸 자체였습니다.
어떤 일은 종이 위에 한 줄로 남고, 어떤 일은 그 종이가 쓰일 수 있게 한 조건으로 남습니다. 조건은 대개 적히지 않습니다. 양식이란 무엇을 적을지 정해 둔 것이면서, 동시에 무엇은 적히지 않아도 되는지를 함께 정해 둔 것이기도 합니다. 다음에 어떤 표나 명단을 마주하게 되면, 채워진 칸들보다 만들어진 적 없는 칸 쪽에 잠시 눈이 머물러도 좋겠습니다. 칸이 없다는 것이, 그 자리에 사람이 없었다는 뜻은 아닐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