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너머의 말이 길어집니다. 규정상 먼저 끊을 수가 없어서, 퇴근 시간이 지나도록 그 말을 끝까지 듣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한 번쯤 스쳐 보셨을 법한 저녁입니다.
이 통화를 붙들고 있는 건 수화기 너머의 말이 아닙니다. 먼저 끊지 말라는, 규정의 한 줄입니다. 응대 규정에는 인사말의 순서도, 목소리의 높이도, 사과의 문장도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이 통화를 언제 끝내도 되는지, 그 문장 하나가 없습니다. 칸트는 사람을 한낱 수단으로만 다루지 말고 언제나 목적으로도 대하라고 했습니다 — 사람을 수단으로 쓰는 일 자체를 금한 게 아니라, 무언가를 얻어 내기 위해 '거쳐 가는 통로'로만 쓰지 말라는 말입니다. 응대 시간은 초 단위로 기록되지만, 그 시간이 누구의 저녁에서 잘려 나왔는지는 어디에도 남지 않습니다. 끝을 정할 수 있는 자리가 한쪽에만 있다면, 그 규정이 지키고 있는 것은 통화의 연결이지 연결을 붙들고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규정에는 사람을 지키려고 쓴 문장이 많습니다. 다만 이 한 통화에서는, 지켜지는 쪽에 한 사람이 빠져 있습니다. '이제 그만해도 됩니다'라는 말을 꺼낼 수 있는 자리는 어느 쪽이었고, 그 말을 기다리기만 하던 자리에는 누가 서 있었는지. 통화를 끝낼 시각을 정하는 문장은 매뉴얼에 아직 없습니다. 오늘 그 한 줄이 놓일 자리는 어느 쪽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