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벽에 A4 한 장이 붙어 있습니다. '미화원과 같이 타기 싫다'는 입주민 민원, 그 아래엔 관리사무소 답변까지 반듯하게 인쇄돼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엘리베이터는, 오늘도 청소하는 분이 타고 오르내립니다.
벽에 붙기 전, 그 문장은 몇 번이나 옮겨 적혔습니다. 누군가의 말에서 민원 서식으로, 서식에서 답변서로, 답변서에서 프린터로. 옮겨질 때마다 문장은 조금씩 더 공적인 것이 되는데, 그 이동 어느 지점에도 '이 문장이 가리키는 사람이 매일 이 엘리베이터를 탄다'를 확인하는 단계는 놓여 있지 않았습니다. 아비샤이 마갈릿은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를 '품위 있는 사회'라고 불렀습니다 — 무례한 개인을 찾아내는 대신, 그 말에 벽을 내준 절차 쪽을 보게 하는 개념입니다. 민원 서식은 무엇이 불편한지를 묻습니다. 그 불편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그 사람도 이 건물에서 하루를 보내는지는 어느 단계에서도 물어지지 않습니다. 이 벽에 비어 있는 건 누군가의 예의가 아니라, 붙이기 전에 그걸 한 번 묻도록 되어 있는 자리입니다.
말을 접수하는 절차는 어느 건물에나 갖춰져 있습니다. 다만 접수된 말이 마지막에 누구의 눈앞에 붙게 되는지, 붙이기 직전에 한 번 확인하는 단계는 아직 그만큼 흔하지 않은 듯합니다. 이 절차 안에서 그 사람은 민원의 대상으로는 등장하지만, 그 민원을 읽게 될 사람으로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종이는, 누가 읽을 것을 전제로 붙은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