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 서류든 진료 안내문이든, 무언가를 받아 들었는데 아래쪽에 지우다 만 메모 한 줄이 남아 있습니다. 저에게 하는 안내가 아니라, 담당자들끼리 저를 두고 적어 둔 짧은 메모요. 무심코 그 한 줄을 읽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지우려다 만 그 한 줄은, 정작 받는 사람이 아니라 그 곁의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받는 사람에게 건네는 안내가 아니라, 옆자리 동료가 읽고 일을 넘기도록 한 사람을 '어떤 건'으로 줄여 적어 둔 메모니까요. 부버는 사람을 마주하는 방식을 '나-너'와 '나-그것'이라 불렀습니다. '너'는 눈을 맞추고 말을 건네는 자리이고, '그것'은 처리하고 분류해 넘겨두는 자리입니다. 그 메모가 아무렇지 않게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건, 이 사람이 언젠가 그걸 읽을 '너'라고는 처음부터 상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 종이 위에는, 이 사람과 눈을 맞출 자리 하나가 애초에 비어 있었던 셈입니다.
우리도 하루에 몇 번쯤은, 누군가를 두고 '처리할 일'로 적거나 말합니다. 그 사람이 언젠가 그 말을 마주하게 될 거라고는 미처 셈하지 않은 채로요. 오늘 오간 안내와 응대 가운데, 마주 볼 자리 하나가 비어 있진 않았는지. 그 빈자리에 눈길이 한 번 머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 '대해' 하던 말은 그 사람에게 '건네는' 말 쪽으로 반 발쯤 돌아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