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들어간 일터에서, 손이 좀 느리다고 이름 대신 '1번' '2번'으로 불려 본 적 있으신가요. '어이, 2번!' 하는 소리에 고개부터 먼저 돌아갑니다. 처음엔 그저 부르기 편한 호칭인가 보다, 하고 넘어갑니다.
그 '부르기 편함'을 그대로 따라가 보면, 묘한 지점이 하나 드러납니다. 번호에는 한 가지 성질이 있습니다 — 오늘 그 자리에 선 사람이 그만두면, 내일 다른 사람이 와서 똑같이 '1번'이 됩니다. 사람이 바뀌어도 번호는 그대로 남지만, 이름은 그 사람이 아니면 채워지지 않는 딱 한 자리를 가리킵니다. 임마누엘 칸트는, 사람을 필요한 일을 시키는 한낱 수단으로만 대하는 것과, 무엇으로도 바꿔 끼울 수 없는 그 자체로 목적인 존재로 대하는 것을 갈라서 봤습니다 — 사람에겐 값이 아니라 존엄이 있어서, 늘 목적으로도 대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번호로만 불리는 그 자리에 비어 있는 것은, 바로 그 '바꿔 끼울 수 없음'을 적어 둘 칸입니다. 일이 1번이 하든 2번이 하든 굴러가도록 짜여 있으면, 그 설계 안에는 '하필 이 사람이어야 하는 이유'가 처음부터 들어설 자리가 없으니까요.
어떤 자리는 사람이 아니라 기능만 있으면 굴러가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 편리함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그렇게 짜인 자리일수록, '누가' 거기 서 있는지를 적어 둘 칸이 슬그머니 지워진다는 것뿐입니다. 오늘 누군가를 '몇 번'이나 '무슨 담당'으로만 부르고 지나간 순간이 있었다면, 그 부름이 가닿은 곳이 그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그 자리였는지 — 답을 서두르지 말고 그냥 곁에 두고 하루를 마쳐도 괜찮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