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깨달음 · 오늘의 깨달음
비모욕

면접 내내 빈 몇 달을 해명하다 보니, 그 시간엔 이름 하나 붙일 칸이 없더군요.

면접을 보러 갔는데, 이력서의 빈 기간 이야기가 나오자 분위기가 한 번 바뀝니다. 그때부터는 질문에 답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뭘 했는지를 자꾸 해명하게 됩니다. 이런 면접, 한 번쯤 앉아 보신 분 계실 거예요.

면접이 그 빈 기간에 던지는 질문은 대개 '왜'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왜'에 마련된 정답의 자리는 하나뿐입니다 — 납득할 사유를 대서 공백을 지우는 것. 아이를 돌봤든, 아팠든, 그저 다음을 고르느라 멈췄든, 그 시간을 '한 사람이 살아낸 시간'으로 적어 둘 칸은 그 자리에 없습니다.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은 품위 있는 사회를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모욕은 누가 언성을 높이는 게 아니라, 멀쩡히 지나온 시간을 해명해야 할 흠으로 되돌려 세우는 절차 그 자체입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비어 있는 건 그 사람의 몇 달이 아니라, 그 몇 달을 흠이 아니라 삶으로 받아 줄 칸 하나입니다.

누군가의 멈췄던 시간에 대고 '왜 그랬냐'부터 묻는 자리는, 면접장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오래 쉬었던 사람이 다시 곁에 설 때 먼저 건네는 첫마디에는, 안부와 해명 요구 사이의 얇은 한 칸이 늘 끼어 있습니다. 그 칸에 무엇을 놓아 두는지는, 정작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이 가장 먼저 알아차리곤 합니다.

오늘의 시선 — 아비샤이 마갈릿(Avishai Margalit): 품위 있는 사회 —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 · 누가 언성을 높이지 않아도, 사람을 해명하거나 굽히게 만드는 절차가 남아 있으면 그 사회는 아직 품위에 이르지 못했다고 보는 시선입니다.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품위 있는 사회 (The Decent Society) · 아비샤이 마갈릿 · 1996

좋은 사회의 기준을 '얼마나 나눠 가졌는가'에서 '사람을 굴욕에 빠뜨리지 않는가'로 옮겨,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를 '품위 있는 사회'라 부르는 책입니다.

면접이 사람을 해명의 자리에 세우는 오늘의 장면을, '제도의 모욕'이라는 렌즈로 한 겹 더 들여다보게 해 줍니다.

PPAI Lab · 소개
Calypso

매일 아침 한 편, 4분의 뒷이야기. 도움은 안 되지만 그냥 읽어보면 재밌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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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질문

오늘 누군가의 '쉰 시간'을 마주했을 때, 그 시간은 해명해야 할 흠이었나요, 아니면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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