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닦고 치우고 삼시세끼를 차려도, 돌아오는 말은 '원래 하는 건데 뭘' 한마디였습니다. 그 말이 나오면 그 얘기는 거기서 끝나고, 곧 다음 끼니가 시작됩니다. 이 대화는 하루 세 번까지도 지나갑니다.
'원래 하는 건데 뭘'이라는 말에는 주어가 없습니다. '누가 했다'가 들어설 자리를 '원래'라는 말이 대신 차지하고 있는 겁니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의 '주인과 노예' 대목에서, 시키는 쪽이 아니라 실제로 손을 대는 쪽이 오히려 자기를 세운다고 봤습니다. 다듬은 물건이 세상에 남고, 사람은 그 남은 것에서 자기가 한 몫을 되돌려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살림은 남지 않는 쪽으로 되어 있는 일입니다. 차린 밥은 먹혀서 사라지고, 닦은 바닥은 다시 밟히고, 갠 옷은 다시 입혀집니다. 그래서 이 일은 해냈을 때가 아니라 안 되어 있을 때만 표시가 나고, 집 안에는 '오늘 이게 되어 있나'를 확인하는 눈은 있어도 '이건 누가 했다'가 어디에 기록되는지는 정해져 있지 않은 셈입니다. 그러니 인사말 한마디가 오간다 해도, 한 일이 한 사람의 몫으로 되돌아오는 통로는 여전히 놓여 있지 않습니다.
'원래 그런 것'이라 불리는 일은 대개, 누가 매일 다시 해 놓아서 원래처럼 보이는 일입니다. 그 '되어 있음'에는 누구의 하루가 들어갔는지가 붙어 있지 않고요. 아무 설명 없이 이미 되어 있던 것 하나쯤은 어느 하루에나 있는데, 그게 저절로 그렇게 된 건지 누가 다시 해 둔 건지는 묻는 쪽에서만 답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