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깨달음 · 오늘의 깨달음
목적성

검사지는 끝까지 읽혔는데, 그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은 한마디도 못 했습니다.

한 시간을 기다려 들어간 진료실. 의사 선생님이 검사 결과지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이상 없네요' 하고는, 정작 제 얘긴 묻지도 않은 채 끝났습니다. 이런 진료, 받아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 장면에서 오래 머문 눈길은 사람이 아니라 결과지 위에 있었습니다. 종이에 찍힌 수치는 빠짐없이 읽혔고, 다만 그 수치가 미처 담지 못한 것—언제부터 이랬는지, 요즘 잠은 어떤지—을 꺼낼 자리는 그 짧은 시간 안에 열리지 않았습니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사람을 대하는 두 방식을 '나-너'와 '나-그것'으로 나눴습니다. 앞의 상대를 마주 앉은 한 사람으로 대하느냐, 읽고 확인하면 끝나는 하나의 대상으로 대하느냐의 차이입니다. 결과지는 '그것'입니다. 그런데 그 종이가 끝내 담지 못하는 한 줄, '오늘 여기 앉은 사람이 무엇을 묻고 싶은가'는 오직 마주 앉아 고개를 들 때에만 열립니다. 이 진료에서 비어 있던 건 시간이 아니라, 결과지 너머의 사람을 향해 눈을 드는 그 한 번의 마주봄이었습니다.

결과지가 틀린 건 아닙니다. 다만 어떤 자리에서는 앞에 놓인 종이가 사람보다 먼저 읽히고, 그 사람이 무엇을 묻고 싶었는지는 끝내 종이 밖에 남습니다. 종이는 몇 초면 다 읽히지만, 그 위로 눈을 드는 한 번은 그 몇 초 안에 좀처럼 들어오지 못합니다. 오늘 마주 앉았던 얼굴 앞에서 끝내 종이 밖에 남겨진 한 줄은 없었는지, 그 비어 있던 자리를 조용히 짚어 보게 됩니다.

오늘의 시선 —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나-너'와 '나-그것' — 사람을 도구(그것)로만 대하는 순간 관계가 사라진다 · 앞에 있는 상대를 마주 앉은 한 사람('너')으로 대하는지, 처리하고 끝낼 하나의 대상('그것')으로 대하는지에 따라, 같은 자리도 전혀 다른 만남이 됩니다.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나와 너 (Ich und Du) · 마르틴 부버 · 1923

사람을 '그것'이 아니라 '너'로 마주할 때에야 비로소 참된 관계와 만남이 열린다고 말하는 책입니다.

결과지 너머에 앉은 사람을 '너'로 마주하는 그 한 번의 눈맞춤이 무엇을 여는지,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닿아 있는 책입니다.

PPAI Lab · 게임 소개
BuddyDrop

친구랑 통화하면서 같이 블록을 떨어뜨리는 듀얼 블록 게임. 둘이 한 화면, 한 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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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질문

오늘 마주 앉은 누군가에게서, 저는 그 사람을 봤을까요 아니면 그 사람의 서류를 봤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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