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하나 먹으려고 매장에 들어섰는데, 주문 화면 첫 장부터 누를 것이 끝도 없이 펼쳐집니다. 뒤로는 줄이 밀리고, 손끝은 어디부터 눌러야 할지 몰라 잠깐 멈칫합니다. 결국 아무것도 못 시키고 그냥 문을 나선 적, 한 번쯤은 스쳐 지나가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주문 화면 맨 위에는 대개 '터치하여 시작하세요'라는 안내가 떠 있습니다. 스스로 고르고, 스스로 담고, 스스로 결제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은 자유를 조금 다르게 봤습니다. 무언가를 '해도 된다'고 허락되어 있는 것과, 그 사람이 실제로 그것을 해낼 수 있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라고요. 화면은 '누구나 주문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 앞에는 화면 순서를 읽어 내는 눈, 좁은 시간 안에 결정하는 손, 뒤에 선 줄을 견디는 여유가 이미 갖춰져 있다고 전제되어 있습니다. 정작 그 전제가 갖춰지지 않은 사람을 위한 다른 길 하나 — 물어볼 사람이든, 기다려 주는 창구든 — 는 그 자리에서 비어 있습니다. 버튼은 해마다 늘어나는데, 그 버튼을 실제로 누를 수 있게 받쳐 주는 자리는 그만큼 사라진 셈입니다.
'스스로 하세요'라는 말은 친절처럼 들리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조건이 함께 놓여 있을 때에만 친절이 됩니다. 그 조건이 빠진 자리에서 '스스로'는 이따금 '알아서 하든가'로 바뀌기도 합니다. '이건 화면으로만 됩니다'라는 문장 뒤에는, 이미 무엇을 갖춘 사람이 소리 없이 상정되어 있습니다. 그 문장이 품은 사람과, 그 곁에서 아무 길도 남겨지지 않은 사람 — 그 둘 사이에 잠깐 시선을 두어 보는 것으로도 충분할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