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깨달음 · 오늘의 깨달음
역량

화면은 '스스로 주문하세요'라고 했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조건은 그 화면 밖에 두고 왔습니다.

햄버거 하나 먹으려고 매장에 들어섰는데, 주문 화면 첫 장부터 누를 것이 끝도 없이 펼쳐집니다. 뒤로는 줄이 밀리고, 손끝은 어디부터 눌러야 할지 몰라 잠깐 멈칫합니다. 결국 아무것도 못 시키고 그냥 문을 나선 적, 한 번쯤은 스쳐 지나가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주문 화면 맨 위에는 대개 '터치하여 시작하세요'라는 안내가 떠 있습니다. 스스로 고르고, 스스로 담고, 스스로 결제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은 자유를 조금 다르게 봤습니다. 무언가를 '해도 된다'고 허락되어 있는 것과, 그 사람이 실제로 그것을 해낼 수 있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라고요. 화면은 '누구나 주문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 앞에는 화면 순서를 읽어 내는 눈, 좁은 시간 안에 결정하는 손, 뒤에 선 줄을 견디는 여유가 이미 갖춰져 있다고 전제되어 있습니다. 정작 그 전제가 갖춰지지 않은 사람을 위한 다른 길 하나 — 물어볼 사람이든, 기다려 주는 창구든 — 는 그 자리에서 비어 있습니다. 버튼은 해마다 늘어나는데, 그 버튼을 실제로 누를 수 있게 받쳐 주는 자리는 그만큼 사라진 셈입니다.

'스스로 하세요'라는 말은 친절처럼 들리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조건이 함께 놓여 있을 때에만 친절이 됩니다. 그 조건이 빠진 자리에서 '스스로'는 이따금 '알아서 하든가'로 바뀌기도 합니다. '이건 화면으로만 됩니다'라는 문장 뒤에는, 이미 무엇을 갖춘 사람이 소리 없이 상정되어 있습니다. 그 문장이 품은 사람과, 그 곁에서 아무 길도 남겨지지 않은 사람 — 그 둘 사이에 잠깐 시선을 두어 보는 것으로도 충분할지 모릅니다.

오늘의 시선 —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 자유로서의 발전 —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능성)가 곧 자유다 · 존엄은 '해도 된다'는 허락이 아니라, 그 일을 실제로 해낼 수 있는 실질적 자유가 주어질 때 지켜진다는 뜻입니다.

이 시선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자유로서의 발전 (Development as Freedom) · 아마르티아 센 · 1999

발전이란 소득의 증가가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누릴 수 있는 자유 —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가 넓어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책입니다.

오늘 키오스크 앞에서 멈칫한 그 장면을, '무엇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실제로 주어졌는가'라는 물음으로 다시 보게 해 주는 책입니다.

PPAI Lab · 소개
Calypso

매일 아침 한 편, 4분의 뒷이야기. 도움은 안 되지만 그냥 읽어보면 재밌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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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질문

오늘 '스스로 하세요'라는 안내를 마주친다면, 그 '스스로'가 누구를 상정하고 누구를 빼놓았는지 그 자리를 잠깐 살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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