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자리, 누군가 잔을 들며 웃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쉬워서 좋아.' 다들 따라 웃고 잔이 부딪힙니다. 어느 술자리에선가 오갔을 법한, 그런 농담입니다.
고르기 쉽다, 다루기 쉽다, 자르기 쉽다. 이 세 마디는 원래 사람에게 붙던 말이 아닙니다. 물건을 살 때, 도구를 쓸 때, 부품을 갈아 끼울 때 쓰던 말입니다. 칸트는 사람을 대하는 오래된 원칙 하나를 남겼습니다 — 사람은 한낱 수단으로만 다뤄선 안 되고, 언제나 목적으로도 대해야 한다는 것. 목적으로 대한다는 건, 저 사람이 무엇에 쓸모 있느냐를 따지기 전에 그 자체로 여겨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방금 그 칭찬에는 쓸모의 목록만 늘어서 있고, 정작 그 사람 자체가 놓일 자리는 없습니다. 웃음이 그 빈자리를 잠깐 덮었을 뿐입니다.
칭찬처럼 들리는 말일수록, 그 안에 사람이 목적으로 놓였는지 도구로 놓였는지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습니다. '쉬워서 좋다'는 말이 오간 자리에는 쓸모의 목록만 남고, 정작 그 쓸모의 주인은 이름 없이 지나가곤 합니다. 웃음이 잠깐 덮어 둔 그 자리를, 오늘은 서둘러 지나치지 않아도 좋겠습니다.